외곽의 지층들

GEOLOGICAL STRATUM OF OUTSKIRTS

2018년 06월 08일 -07월 20일

JUNE 08 – JULY 20, 2018

 

연계프로그램

해움뮤지엄 나잇 6.22(금) 6PM

성곽마을탐사단 6.30(토) 3PM-5PM

정상곤 아티스트토크 &드라이포인트

7.3(금) 3PM- 5PM

전시정보

2018 해움미술관 외곽의 지층들

 

동양이나 서양이나 산업혁명 이전 도시들은 ‘성곽도시’라고 불리는 방어형 도시였다. 성곽도시는 전통적으로 뚜렷한 ‘경계’와 ‘영역’을 갖는 폐쇄적 공간구조를 갖는데, 성벽은 군사행정을 위한 건조물인 동시에 안과 밖을 분리해 도시 안의 재화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았으며, 성문은 그 흐름을 관리하는 수단 이었다. 근대에 이르러 도시외곽에 세운 통제기구인 성벽을 허물고, 그 자리에 도로가 놓이게 되면서 도시의 형태와 구조는 변혁을 이루게 되었다. 근대성은 자본주의적 출현과 함께 사회과정 속에서 형성된 총체적인 생활경험과 양식을 의미한다. 도시는 근대성의 산물이자 산실이라 볼 수 있는데, 자본주의 사회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등 거대한 근대화 물결을 형성하고, 도시는 자본의 순환을 가속시키기 위한 구조로 재편된다. 도시풍경의 외연적 확장과 팽창이라는 이면에는 도시로부터 빈민 추방이라는 부분이 늘 자리한다. 자본주의적 생산 시스템은 도시 내에 계급구조를 형성하고, 이러한 도시의 아비투스 과정에서 빈민들은 도시 변두리로 내몰리는 것이다. 나아가 도시화의 압도적 진전과 물신주의적 조건 속에서 사람들의 삶의 양식은 점차 도시적인 것의 틀 속에 갇혀 지고 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도시풍경과 도시문화는 어떤 양상을 띠고 있는가? 서로 다른 층들의 작용하는 힘이 다른 것처럼 도시는 장소마다 시대마다 다른 과거의 지층 위에 서있으며, 과거와 현재의 층들이 조우하면서 드러난 도시의 변증법적 이미지는 그 도시의 풍경을 만든다. 자본주의적 도시화는 층들을 균질하게 재편하면서 도시의 장소성과 역사성의 흔적을 지우지만, 도시화를 빗겨간, 내몰린, 도심외곽의 지층들은 유기적으로 살아오면서 신간과 공간 사이 여러 단계의 궤적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곳이다. 역사적 기억과 삶들이 공존하는 도심외곽에 대한 사유는 현대도시의 자장 속으로 속절없이 편입해 들어가는 것이 아닌 비-도시적인 삶에 대한 실천이다.

전시 외곽의 지층들은 켜켜이 쌓인 도시 외곽의 지층(layers)을 자신들의 방법으로 판(plate)에 새기고 기록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고자 한다. 전시는 판화의 매체적 특성인 틈의 흔적(판위에 새겨지거나 남겨진)을 통해 도시풍경의 흔적(spur)’(layer)’의 개념을 확장시키고, 도시공간과 판화 사이의 미적가능성 에 대한 변증법적 사유를 제시한다.

 

 도시공간의 흔적과 흔적읽기.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도시풍경, 삶의 풍경은 사소한 개인의 기억 흔적(Spur) 뿐만 아니라 역사적 흔적이 담겨있다. 도시는 과거와 현재의 우연적 시간과 필연적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간, 물질, 기억과 흔적들의 퇴적층이라 할 수 있다. 벤야민이 말했듯이, 도시는 일종의 도서관처럼 많은 자료들을 간직하고 있으며 또 그렇기 때문에 읽을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흔적은 ‘어떤 현상이나 실체가 없어졌거나 지나간 뒤에 남은 자국이나 자취’라는 일반적인 개념을 갖는다. 도시공간에서 흔적을 탐사하는 예술가들은 ‘흔적을 추구하는 자’ 이자 동시에 ‘흔적을 남기는 자’이다. 무심한 산택자의 시선으로 또는 날카로운 탐정의 시선으로 그들은 도시를 읽는다. 이들의 작업은 ‘흔적읽기’이다. 흔적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것을 남긴 대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며, 흔적의 이미지는 그때의 형상을 넘어선다. 판이 남긴 흔적이 예술작품이 되는 판화 매체의 간접성은 이러한 도시흔적의 의미와 유사성을 갖는다. 판화의 물성은 간접적으로 찍어진 흔적이라는 점에서 도시공간의 부재와 현존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적합한 매체이다. 전시는 표현의 층위에 생성 된 이미지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도시경관 의 이미지를 사유하고자 한다.

 

 

작가소개

이상국 화백 그가 태어난 고향이자 생의 마지막 까지 삶의 터이자 정서의 근간을 이루는 홍은동, 홍제동은 서울이지만 도심의 남루하게 집적된 변두리 마을이다. 70년대 이후 정치적 불안과 서울의 급격한 도시개발 속에서도 40여년 간 질긴 삶의 표현들을 담은 산동네 풍경화는 한국목판화의 주요한 단서와 궤적을 이룬다. 다닥다닥 모여있는 변두리 삶은 견고한 형상성만 남긴 채로 산모양을 이룬다. 판재의 물성적 표현은 작가의 몸에서 미뤄낸 손 끝의 압력과 만나 생성된 리듬의 양상이다. 가난한 삶은 불행과 유리된 것처럼, 변두리 삶은 강인하며, 맑다.

 

배남경 작가는 특정지역, 특정시간과 공간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배회하는 도시인의 삶을 보여준다. 작가의 개인적인 사생활에서 채집된 것이지만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투명하게 떠올라 영원한 순간을 붙들어 잡는 듯하다. 작가는 평면성이 강한 목판화에 한국 고유의 질감을 가진 한지, 한국화 물감, 먹을 사용한다. 흑백사진 보는 것과 같은 이미지들의 스며듦과 번짐 효과는 작가가 수차례 반복 인쇄하면서 회화적 깊이를 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겨진 이미지 층들의 흔적들은 일상 속에 담겨진 삶의 본질 속에 몰입하면서 순간적인 의미들을 생성한다.

 

김홍식 작가는 카메라로 1차적으로 기록된 도시이미지를 스테인리스스틸 판에 안착하여 금속을 부식시킨다. 부식된 금속판은 다시 종이에 이미지를 인쇄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부식되고 마모되어 가는 물질성은 사라진 공간에서 기억 속에 현존하는 도시이미지를 담는다. 특정 지명을 가리키는 ‘통의동’, ‘성북동’ , 그리고 국보 1호인 숭례문 전소라는 사건을 담은 ‘그날 이후의 기록’은 관조적 시선으로 도시를 관찰하면서 남겨진 흔적 읽기의 이미지들이다. 도시경관 이미지들은 스테인리스스틸의 차갑고 부식되는 물질성과 같이 기억의 공간 속에서 유랑한다.

 

정상곤작가 도시공간에서는 집단적 기억을 상기시키는 기념물이 있다. 기념물은 개인적, 역사적 흔적을 간직하며 과거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 사건을 기억해야하는 이유를 상기시킨다. 500년이 넘는 ‘창덕궁 회화나무’, 경복궁 ‘향원정 나무’는 과거의 장소를 보존하는 박물관화, 마치 박제화 된 것처럼 일상과 분리되어 아우라적 지각방식으로 체험된다. 작가는 공간의 역사문화적 맥락 속에서 읽어진 기념물을 의도적으로 또는 비의도적으로 흔적을 지우며 ‘결핍된 풍경’을 낳는다. 이미지는 기념물이 갖는 역사적 사건과 무관한 비-장소적 풍경 속에서 소멸되며, 감각적 실재만 남긴 채 개인적 일상과 만나 혼재된다.

 

차민영 작가 판화와 영상을 전공한 작가의 세밀한 정교함은 자본주의 체계를 이루는 구성요소를 가방 속 미니어처로 완벽하게 맞추어 보여준다. 이동하는 가방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도시인들의 삶이자 자본주의 사회의 흐름을 표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동이 일상화된 도시인의 삶은 유목민의 삶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곳으로 부랑하거나, 쫓겨나는 삶들은 쉽고, 빠르게 자본주의 메커니즘 속에서 포섭된다. 작가는 이러한 자본의 흐름을 이동하는 가방 속에 3차원 적으로 끌어 들임으로써 자본에 의해 포섭된 삶이 아니라 자유로운 삶을 위한 탈주와 장소에 대한 애정을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