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溫).한(寒)의 표면-붓과 칼의 담(談)

참여작가: 손기환,조진호

2025년 7월 4일(Fri.) – 9월 26일(Fri.)
Jul. 4 – Sept. 26, 2025

 

인사말

해움미술관에서는 2025년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손기환, 조진호 작가의 전시를 개최합니다. 전시 부제인 ‘붓과 칼의 담談’은 두 작가가 회화와 판화를 주요 작품활동 매체로 사용한다는 공통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특별히 조진호 작가의 회화와 판화, 손기환 작가의 판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붓으로 표면에 안료를 덧대는 회화와 조각칼을 통해 매체의 표면을 깎아내는 판화는 그 성격과 예술적 온도가 상반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공기 중 따뜻함과 차가움의 온도 차로 생긴 유체의 흐름이 우리에게 열을 전달해 주듯, 두 작가의 심혈이 담긴 붓과 조각칼의 움직임은 그들의 작품을 통해 소리 없이 강한 이미지로 관람객들에게 다가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판화와 회화의 조형적 예술혼’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전시 평론

<온(溫).한(寒)의 표면-붓과 칼의 담(談)>

평론: 이선영 평론가
번역: 이영교 박사 (한국박물관협회 2025 뮤지엄커넥션 전문번역가)

2025년 해움미술관의 첫기획전인 <온(溫).한(寒)의 표면-붓과 칼의 담(談)-손기환, 조진호>은 색과 형태에 있어서 반대편에 놓인 항들이 공존하고 대화하는 전시다. 따스함과 차가움은 그 온도의 차이로 공기 중의 입자가 이동하는 듯한 잠재적 움직임을 내포한다. 붓과 칼이라는 키워드는 두 작가가 회화와 판화를 주요 매체로 사용한다는 공통점에서 왔다. 이들의 작품 면면은 붓과 칼처럼 소리 없이 강한 이미지의 특성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서 조진호는 회화와 판화를, 손기환은 판화를 주로 선보인다.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문화를 [국화와 칼]로 요약하면서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을 지적했다면, 이 전시에서의 ‘붓과 칼’에서의 칼은 붓의 변주로 예술적 맥락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칼’이 지니는 절도와 날카로움이 배제되지는 않는다. 이 두 작가의 작품이 기층 민중 문화의 혁명적 잠재력과 접속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반대되는 항목을 마주하게 하면서 얻는 더 큰 효과는 보편성이다. 앞서 인용한 인류학의 예들은 각 문화권에서 안정적인 두 항을 찾아낸다. 가장 대표적인 이는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사상이다. 구조주의적 사유는 인류학을 넘어서 인문 사회 분야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끼쳤다. 레비 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에서 서구사회를 과열된(hot) 또는 동적인 사회를 정적인(cool) 사회와 대조한 바 있다. 전자는 발전과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뜨겁고 후자는 반복적인 지속이 특징이라는 점에서 차갑다.

조진호
조진호의 작품에는 인간의 문명보다 더 느릿하게 진화해 온 자연의 리듬과 조응하는 소재가 다수 등장한다. 가지와 밑둥을 생략한 채 화면을 가득 메운 거목은 붓으로 그려졌지만, 판화의 강하고 단순한 조형 언어를 공유한다. 무채색 톤과 확연히 구별되는 붉은색 거목 안에는 인간의 몸짓이 빼곡하게 담긴다. 희생과 응전으로 이루어진 역사는 자연에 비해 더 역동적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조차도 거목의 품에 넣어 인간사를 자연사에 복속시킨다. 판화작품에서는 석상과 돌탑, 정한수와 기와집, 풍경(風磬)과 소 등 민속적 소재가 등장한다. 딱 이름붙일 수 있는 역사적 대상은 아니지만, 그가 선택한 여러 황토 유산들은 무명의 영토에 자연처럼 존재한다.

오래된 조상(彫像) 형태의 외곽선 안에 꽃, 정한수, 탑, 새 등의 이미지가 빼곡하게 쟁여져 있는 작품은 그가 다루는 전래의 소재들이 자연을 다룰 때 표현하는 방식과 같다. 그는 간결하고 힘찬 선으로 핵심만을 표현한다. 조상 안에 쟁여진 또 다른 조상이나 민초들의 희망을 담은 돌탑은 무한히 회귀할 뿐 문명사의 강박관념인 ‘발전’주의는 없다. 살아있는 닭과 엮인 굴비 등을 보자기에 싸안고 어딘가로 향하는 노부부는 명절 때 이루어진 것같은 오래간만의 이동일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출퇴근하는 현대인도 있는 것에 비하면, 그들이 누리는 ‘문명’은 느릿하고 간헐적이다.

손기환
팝아트와 정치를 결합시킨 작가로 평가되는 손기환의 판화는 1980년대 민중미술의 한 켠에서 민중과 더불어 대중을 끌어안으려는 시도와 연결된다. 이전의 만화적 어법의 회화와 마찬가지로 판화 또한 간략함과 강렬함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로 선택된다. 다만 그의 판화는 1980년대식의 전위적 메시지 전달보다는 보다 보편적인 삶을 아우르려 한다. 보편성은 구조주의가 인간 주체보다 구조의 힘을 강조하면서 부각된다.

구조적 보편성은 실존적 사고가 개성을, 변증법적 사고가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하나의 형태와 특정 의미로 고정되지는 않지만, 붉은 꽃과 푸른 산 등이 떠오르는 풍경은 음과 양 같은 구조적 대립항의 관계가 돋보인다. 화면 가득히 산포된 존재들은 상호관계의 망을 이룬다. 식물과 새 등의 형태를 찾을 수 있는 작품도 개체적 존재보다는 전체가 한데 어울려 삶의 무늬를 짜는데 방점이 찍힌다. 서로 돕기도 하고 경쟁도 하는 자연에는 빈틈이 없다.

그의 풍경은 서정성을 넘어 굵고 힘찬 명암의 선들이 특징이며 하나의 광경으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풍경화 된다. 꽃, 나무, 다리, 배, 옛 건물 등이 흑백의 흐름 속에 종합된다. 힘 있는 선이지만 사물의 경계를 명확히 고정시키는 선은 아니다. 강력한 명암 대조에 붉은 포인트인 꽃은 칼날처럼 예리하다. 매해 다시 태어나는 식물의 순환적 시간관은 단선적 진보의 역기능에 대한 대안적 모델이 된다.

 

Review of the exhibition

<A surface of warmth and coldness – the discourse of brush and carving knives>
Sun-Young Lee (Art critic)
Translated by Dr. Younggyo Lee (2025 Museum Connection of The Korean Museum Association Professional Translator)

 

The first exhibition of Haeum Museum of Art in 2025 is <A surface of warmth and coldness – the discourse of brush and carving knives>. Ki Hwan Son and Jin Ho Cho join this exhibition where the opposite artistic factors coexist and communicate with each other in color and shape. Warmth and coldness imply potential movements as if particles in the air are moving due to the difference in temperature. The keywords of the subtitle come from the common point that the two artists use paintings and engravings as their main media of art works. Their works are characterized by strong images without sound like brushes and carving knives. In this exhibition, Cho will show paintings and engravings, while Son Ki-hwan will show engravings.

The famous American anthropologist Ruth Benedict(1887-1948) pointed out samurai spirit by summarizing Japanese culture through her book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Patterns of Japanese Culture> (1946). Although the carving knives in this exhibition was used as an artistic context as a variation of the brush, the discipline and sharpness of ‘knife’ are still existed. This is because the works of these two artists try to connect with the revolutionary potential of the basic of people’s culture. However two opposing terms confront each other and create universality as a greater effect. The anthropological examples cited above find two stable terms in each culture. The most representative example is structuralism by Claude Levi Strauss (1908-2009). Structural thinking has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entire humanities and social fields beyond anthropology. In his book <Tristes Tropiques / Sad Tropics> (1955), he contrasted Western society with a static society as an overheated or dynamic society. The former is hot in that it pursues development and novelty and the latter is cold in that it is characterized by repetitive continuation.

Jin Ho Cho

조진호의 작품은 인간의 문명보다 더 느리게 진화해 온 자연의 리듬에 부합하는 다양한 소재를 담고 있습니다. 가지와 밑동 없이 화면 전체를 뒤덮은 거대한 나무는 붓으로 그려졌지만, 판화에서 볼 수 있는 강렬하고 단순한 조형 언어를 공유합니다. 무채색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붉은 거목은 인간의 몸짓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희생과 전쟁에 대한 응답으로 점철된 인간의 역사가 자연의 역사보다 더 역동적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자신을 거대한 나무의 품에 안고 인간의 역사를 자연의 역사에 종속시킵니다. 석상과 석루, 정한수와 기와집, 풍경, 소와 같은 민속적 소재들이 그의 판화에 등장합니다. 비록 명칭이 있는 역사적 장소는 아니지만, 그가 예술적 소재로 선택한 많은 황토색 유산들은 마치 미지의 영역에 존재하는 자연처럼 존재합니다.

꽃, 정화수, 탑, 새 등의 이미지가 오래된 조각상의 윤곽 안에 담겨 있는 이 작품은 작가가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자연을 표현하는 방식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선만으로 핵심을 드러냅니다. 조각상 안에 또 다른 조각상이, 혹은 사람들의 희망이 담긴 돌탑이 무한히 되돌아오는 듯하지만, 문명사의 집착이었던 ‘개발주의’는 결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닭과 노란 까마귀를 천에 싸서 어딘가로 향하는 노부부는 오랜만에 휴가를 맞아 첫발을 내딛습니다. 비행기로 출퇴근하는 현대인들과 비교했을 때, 이 노부부가 누리는 ‘문명’은 느리고 단절적입니다.

손기환

손기환은 팝아트와 정치를 결합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의 판화 작업은 1980년대 민속 예술의 한 측면에서 대중과 대중을 포용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이전 회화 작품에서 만화적인 언어를 사용했던 그는,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판화라는 표현 매체를 선택했다. 그러나 그의 판화에서는 1980년대 전위 예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보편적인 삶의 주제를 다루는 경향이 드러난다. 이러한 보편성은 인간적인 대상보다는 구조의 힘을 강조함으로써 더욱 부각된다.

구조적 보편성은 개별성을 강조하는 실존적 사고나 특수성을 강조하는 변증법적 사고와는 다릅니다. 붉은 꽃과 푸른 산이 어우러진 풍경은 하나의 형태나 특정한 의미로 고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음양과 같은 구조적 대립의 놀라운 관계를 보여줍니다. 그의 작품 속 화면에 흩어져 있는 존재들은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작품에서 식물이나 새와 같은 형태를 찾아볼 수 있지만, 개별적인 요소보다는 전체가 하나로 모여 삶의 패턴을 엮어내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서로 돕고 경쟁하는 자연은 완벽합니다.

그의 작품 속 풍경은 서정성을 초월하는 굵고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선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정된 장면이 아니라 그 자체가 풍경이 된다. 꽃, 나무, 다리, 배, 오래된 건물들이 흑백의 흐름 속에서 유기적으로 합성된다. 역동적인 선이지만, 사물의 경계를 명확하게 고정하는 선은 아니다. 뚜렷한 대비 속에서 돋보이는 붉은 꽃은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다. 해마다 피어나는 식물의 순환적인 시간관은 일직선으로 진행되는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적 모델이 된다.